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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직설』, 직설이냐 독설이냐 배설이냐
    책/2019년 2019. 3. 3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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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사진은 찍지만 사진가라거나 예술 활동을 한다는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사진 활동은 하다보니 사진과 관련한 이런저런 책들은 뜨문뜨문이라도 읽으려는 편이다 며칠 전부터 손에 잡은 게 『사진직설』이다

     

    저자 최건수, 개인적으로는 전혀 아는 바 없다 그저 사진 관련 책들을 찾다보니 그런 평론가가 있다는 정도만 안다 이 책의 (긴) 부제는 '사진 평론 30년 최건수가 거침 없이 풀어놓는 사진 세상'이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고, '직설'을 표방한 책답게 시원시원 읽힌다 이른바 사진판과 관련한 얘기들이 많고, 디지털 시대 사진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쓴소리도 적잖다

     

    절반쯤 읽었는데 지금까지의 느낌을 길지 않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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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직설이라지만 좀 심하다 싶은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55쪽에 이런 단락이 있다

     

    사진 찍는 일처럼 쉬운 일도 없다. 그 '찍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우주선의 무인 카메라는 우주의 비밀을 찍어 수시로 지구로 전송을 한다. 원숭이들도 멋진 사진을 찍고 시각 장애인들이 찍은 사진이 전시되기도 한다. 개도 소도 모두 사진을 찍는 세상이다.

     

    프롤로그를 보니 '2013년 초겨울 어느 첫새벽에' 썼고, 출판은 2014년 2월 7일이다 5~6년 정도 됐는데, 그때는 원숭이, 시각 장애인, 개, 소를 동급으로 놓고 책이라는 사회적 발언을 해도 됐나? 그렇지 않았던 거 같은데

     

    사진 평론가 혹은 미술 평론가, 좀 더 정확하게는 예술 평론가 최건수는, 97쪽에선 이렇게 쓴다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 눈치 보며 그들의 주름살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엄청난 사회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듯 달동네나 노숙자를 찍어대던 일이 점점 시시해진다. 누가 찍었는지 촬영자 이름만 빼면 그게 다 그거 같은 풍경사진이나 꽃 사진을 찍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다

     

    무슨 뜻인지 짐작은 되는데, 최건수 평론가의 다른 책은 읽어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사회적 감수성, 상대에 대한 배려 같은 덕목을 느낄 수 없다 예술을 하려면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하기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썩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재밌는 건, 이 책의 다른 대목에선 최건수 평론가 스스로가 이런 얘기를 한다

     

    연초에 누가 보냈는지 알 길 없는 신년 선물을 받았다. ... 달갑지 않은 '나이 한 살'이라는 선물이다. ... 나는 이 선물을 받은 후 '악'소리 한번 못 내고 공인 이순耳順이 되었다. 어찌 이럴 수가? ... 내 처방전은 방하착放下着이다. 보듬고 있는 모든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뜻. ... 요즘은 뒷산 산책을 나가 비법 수행에 용맹정진 중이다. (58쪽)

     

    그러면서 한기팔 시인의 <저녁 산책>이라는 시도 인용한다(59ㅉ)

     

    이순耳順의 나이는

    적은 나이가 아니지

     

    살만큼 살았다는 나이

    무엇이나 침묵으로 듣는 나이

    가슴에 묻어두는 나이

     

    이 외에 책의 다른 부분에서 자신의 입을 탓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최건수 평론가는 '직설'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책의 부제에도 있듯 '거침 없이' 사회적 약자의 가슴을 도려내는 말을 하고, 장삼이사의 평범한 사진 생활을 조롱하고 희화화한다

     

    이 책의 장점도 눈에 띈다 최 평론가의 생활 '찍사'를 얕잡아보는 문장들을 견디며 읽다보면, 사진가랍시고 으쓱하고 다니기가 영 민망하고 부끄러울 거다 띠내지 않고 조용히 다니게 될 거 같다 이 과정도 버틸 수 있으면, 사진가를 뛰어넘는 예술가에 도전해보자는 용기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부분은 그냥 나름, 냉소적으로 적어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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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실제로 있다 사진에 대한 생각의 폭 혹은 개념을 좀 더 알게 됐다 특히 이른바 현대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사진을 바라보는 시각을 잘 알게 됐다 거기에 동의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알게 됐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세계 사진사의 의미 있는 변화라면 '재현' 사진의 퇴조라고 할 수 있다. 그 자리에 소위 '만드는' 사진이 밀고 들어왔다. ... 방법론적으로, 사진이 예술을 꿈꿀 때 사진만으로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면 다른 예술의 지원을 받는 우회적 방법을 속속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흔히 쓰는 융합, 혼성, 통섭 같은 단어들이 사진에서도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적어도 겉모습만 보면 사진은 껍데기임이 분명하다. 한 껍질만 벗겨내고 사진 속을 들여다보면 회화, 조각, 행위 미술, 영화 같은 오만 가지 예술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사진은 이제 포장 역할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92쪽)

     

    그리고 아는 게 많은 이의 책을 읽다보면 덤처럼 따라오는 것의 하나가, 인용(문)이다 지은이 고유의 생각이건 지은이가 누군가의 것을 따온 것이건 도움이 된다 최건수 평론가도 이 책 곳곳에서 괜찮은 듯 보이는 발언을 들려주고 인용을 한다

     

    혁신적이 모험적으로 하라.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충격을 주고 변화를 주어라. 그런 사진들이 관심의 대상이다. (109쪽) '뉴욕 국제사진센타(ICP)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필립스의 고귀한 말씀'이라고 한다

     

    사진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다. 정상을 향해 고도계를 가지고 허겁지겁 오르면 발병이 난다. 사진은 바다나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망망한 바다에서 좌표를 따라가는 배의 항해나 낙타가 느리게 사막을 건너는 것과 닮았다. (117쪽) 이건 '사진 평론 30년' 최건수 평론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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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미술에 포섭시키고 그래서 예술이 돼야 한다는 최건수 평론가에게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건 이 책을 마저 다 읽고 정리해보자 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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